제목: 가이사에게 상소하는 바울
본문: 사도행전 25:1~27
일자: 2026-10-0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은 바울이 로마 총독 베스도 앞에서 “내가 가이사에게 상소하노라!”라고 외치는 장면입니다. 단순히 목숨을 구하기 위한 법적 호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에클레시아를 세우려는 선교적 결단이 담겨 있습니다.
1. 에클레시아의 본질
‘에클레시아’는 원래 그리스 사회에서 시민들이 모여 정치적 결정을 내리는 민회를 뜻했습니다. 그러나 그 모임은 철저히 배제의 공동체였습니다. 여성, 노예, 이방인은 들어올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세상의 에클레시아입니다.
반면, 성령 안에서 탄생한 하나님의 에클레시아는 완전히 다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남자와 여자, 주인과 노예가 함께 어울리는 환대의 공동체입니다. 배제 대신 환대, 권력 대신 샬롬을 보여주는 대안 공동체입니다.
2. 바울의 상소 – 법적 호소가 아닌 선교적 결단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가면 암살당할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살기 위해 로마를 택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이미 “네가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행 23:11)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은 황제 앞에 서서 복음을 증언하기 위해, 세상의 권력 중심부에 들어가기 위해 상소한 것입니다.
여기서 사용된 헬라어 ‘에피칼레오마이’는 단순히 법적 상소가 아니라,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자가 그 소명을 완성하기 위한 결단을 뜻합니다. 바울은 자기중심성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선교적 감수성에 응답한 것입니다.
3. 오늘의 메시지 – 우리의 삶이 곧 상소가 되어야 한다
성도 여러분, 교회가 세상의 에클레시아처럼 권력과 배제의 모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에클레시아로서 세상 속에 샬롬을 심는 대안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처럼, 느헤미야처럼, 모라비안 선교사들처럼 우리는 자기 안위를 내려놓고 무너진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시선에 응답해야 합니다. 우리의 직장, 가정, 사회 속에서 정의와 평화를 실천하는 삶 자체가 세상을 향한 ‘상소’가 되는 것입니다.
결론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베스도처럼 세상의 논리에 타협하며 살겠습니까, 아니면 바울처럼 하나님의 선교를 품고 세상 한복판으로 나아가겠습니까?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에클레시아, 곧 샬롬을 시각화하는 공동체입니다. 이번 한 주간, 여러분의 시선이 성전 미문에 앉아 있는 소외된 이웃에게 향하길 바랍니다. 그들을 환대하고, 평화를 실천하며, 세상 속에 하나님의 에클레시아를 세워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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